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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루할 정도로 긴 이야기라서... 선택은 자유!!
돌아서서 과거와 악수하다
- 김원일의 《전갈》 -
김원일의 소설을 두고 비평가 김현은 가족소설이라 명명한 바 있죠. 그것은 김원일이 ‘이야기하는 화자가 자기의 변덕스러운 욕망에 따라 자기의 가족적 정황을 바꿔 이야기하는 이야기’를 소설 속에 그려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김원일 소설의 대부분은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서사의 중심축이 되고 있죠.
하지만 김원일 소설 속의 가족들이 존재하고 있는 공간과 시간을 살피다 보면, 김원일의 소설을 ‘가족 소설’이라고만 부르기엔 뭔가 부족한 부분이 채워지지 않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는 듯합니다. 《바람과 강》에서는 식민지 시대, 《노을》과 《불의 제전》, <어둠의 혼>에서는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에 다다르는 시간, 《환멸을 찾아서》는 이산가족이 발생하던 시기, <잠시 눕는 풀>과 <파라암>에서는 부조리로 얼룩진 70년대의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시대 역사와 맞물려 돌아가는 김원일의 소설을 단순히 ‘가족소설’이라고만 부른다는 건, 작가 김원일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까지 출간된 김원일의 소설이 아우르고 있는 근현대사는, 『실천문학』에 5회에 걸쳐 연재되고 2007년에 출간된 장편 《전갈》에 와서 더욱 장대해집니다. 김원일의 중장편에서 보이던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소설 곳곳에 배치되고, 역사의 질곡 속에 파묻히며 새겨졌을 서민들의 상처와 아픔이 더 세밀하게 그려집니다. 또한 삼대라는 커다란 가족 역사 안에서 백년이라는 시간동안 삼대의 가족들이 겪어야만 했던 좌절과 상처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김원일의 《전갈》은 삼대의 가족을 통해 백년의 근현대사와 그 아픈 역사 속에서 갖은 굴욕을 견뎌내는 서민의 모습을 잘 묘파해 냈다고 평가됩니다. 작가인 김원일 스스로도 ‘그들 삼대가 당대 사회에서는 소수집단으로 분류될지라도 그들의 발자취야말로 우리 현대사의 한 부분을 담당했던 그림자와 같은 존재였다’고 말한 바 있구요.
김원일의 소설을 ‘가족소설’로 보는 시선에서 조금 더 나아가 보면 김원일의 장편 《전갈》이 우리 역사 백년과 어떻게 조응하고 있는가를 살필 수 있습니다. 가족이 처한 현실, 가족 간의 관계, 삼대가 상징하는 소시민적 삶 등으로 파악될 수 있는 미시적 서사는 잠시 뒤로 미뤄두고,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인 강치무, 아버지인 강천동, 그리고 아들인 강재필로 대표되는 삼대가 거대 서사를 통해 형성해 내는 백년의 역사는 과연 어떤 역사일까요?
1. 아픈 반쪽의 삶 - 강치무의 경우
원대한 희망을 가슴에 품고 아픈 역사의 현장으로 뛰어들었으나 무자비한 일본의 억압 아래에서 서서히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던 강치무의 삶은 아픔으로 점철되어 있지요. 이런 강치무의 아픈 삶이 자세히 다뤄지고 있는 부분은 6장과 8장이다. 6장에서는 독립운동가로서의 조선인 강치무가, 8장에서는 일본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일본 초병 보조원으로서의 강치무가 그려집니다. 6장에는 특히 일본에 강렬하게 저항하는 민족운동가로서의 면모가 자세히 드러난답니다.
강치무는 청년 시절 대한독립군 소속 하사관으로서 수많은 전투에서 승승장구합니다. 자유시에서 동족과 총칼을 겨눠야 하는 참변을 잠시 겪기도 하지만, 자유시 참변 이후 블라디보스토크에 정착한 뒤에는 공산계열 독립운동원으로 활동을 재개합니다. 일본영사관 소속 사복형사에게 연행되기 이전까지 강치무가 보여주던 독립운동가로서의 모습들은, 그가 비록 천민 출신이지만 민족해방에 대해 얼마나 뜨거운 열망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잘 드러내줍니다.
그러나 8장에서는 강치무의 그런 열망이 조금씩 사그라지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일본영사관 소속 사복형사에게 연행되어 하얼빈 방역급수부대(제731부대)에 수감된 강치무는 운 좋게 이케다라는 소위의 눈에 띠어 부대 초병 보조원의 역할을 맡게 됩니다. 강치무는 그곳 방역급수부대에서 마루타로 잔혹하게 처형되는 수많은 사람들을 지켜보며, 조선인임을 잊지 않아야 하느냐, 목숨을 보전해야 하느냐의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다가 목숨을 보전하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리고 일본에게 짐승처럼 복종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합니다.
때문에 6장과 8장에서 나타나는 강치무의 모습은 매우 대조적입니다. 6장에서의 모습은 조국해방의 열망을 안고 관동군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이고, 8장에서의 모습은 조국해방의 열망을 접고 관동군 밑에서 초병 보조원 노릇이나 하며 목숨을 연명하는 모습입니다. 6장에서는 온전히 조선인으로 살지만, 8장에서는 반쪽만 조선인으로 살고 반쪽은 황국 신민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강치무의 삶은 반쪽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황국 신민으로서의 표면적 삶과 조선인으로서의 이면적 삶을 반반씩 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강치무의 삶은 마땅히 그래야 했기 때문에 반쪽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자비하고 폭력적이어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슬픈 현실이 강치무를 반쪽의 삶으로 내몬 것뿐입니다.
구속기간이 언제까지이니 그 기간만 견뎌내면 된다는 실낱같은 희망조차 없이 강도를 높여가며 장기간에 걸친 고문이 일상적으로 되풀이될 때, 여기에 항복해 심중에 감춘 기밀을 토설하지 않는 자가 드물었다. 형극을 견디다 못해 낱낱이 자백하거나, 심문자가 놓치고 있는 일부를 숨기거나, 둘러대거나, 타인에게 책임을 떠넘기거나 하는 차이는 있을망정 입이 있고 말을 하는 이상 자백하게 마련이다. 이 모든 악행을 다 이겨낼 수 있어야만 지사, 의사, 열사로 흠모할 수 있다는 순혈주의 논객의 주문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시대를 살며 당사자가 직접 겪어보지 않고 필봉깨나 휘두르는 후대 논객의 그런 주문이야말로 음풍농월일 수 있다. 진실로 극소수의 위인만이 끝까지 입 봉하거나 자해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그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이런 반쪽의 삶은 비단 강치무에게 적용되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고되고 아팠던 그 삶은 일본의 강압 아래 살았던 조선인 대부분에게 강요되었던 삶이었고, 더 나아가서는 일본에게 강제로 짓밟힌 그 시대에도 강요되던 삶이었습니다. 반쪽은 조선인으로 몰래 살고 다른 반쪽은 광포한 폭력에 휘둘리며 황국의 신민인 듯이 사는 것, 그것은 언젠가 다가올 희미한 조국해방의 불씨를 붙잡고 있기 위해서 어쩔 수없이 택해야 하는 생존 방법이었습니다. 그렇게라도 살아야했기에 그들의 삶은 아팠고 그 시대도 아팠습니다. 강치무의 반쪽 삶이 아팠던 것처럼 말이죠.
문학을 하던 사람들 중 친일 행적이 드러난 작가들이 많죠. 그들이 살아남아야 했던 방식을 우리가 반드시 욕할 수 있느냐의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친일 행위가 칭찬받을 수는 없지만, 유명 인사이기 때문에 친일 행위를 강요받아야만 했던, 그리고 훗날을 위해 이를 악물고 살아남아야만 했던 몇몇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삶은 매우 아팠을 것입니다.
2. 불구(不具)에도 불구(不拘)하고 일어서는 거친 삶 - 강천동의 경우
강치무의 삶이 굴복의 역사 속에서 어쩔 수 없는 반쪽의 삶을 살아야 했기에 아팠다면, 강치무의 아들 강천동이라는 인물의 삶은 더럽고 포악하며 거칠기 짝이 없습니다. 배고픔과 더러움으로 얼룩져 있는 유년시절을 겪어야만 했던 강천동에게 그런 삶은 태생적으로 주어져 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버지 강치무는 초병 근무를 나가야 했고, 어머니 김덕순은 식당에 나가 돈벌이를 해야 했으므로, 강천동은 유년시절을 보내는 동안 동생을 업고 길거리로 나가 쓰레기들을 뒤져서 상한 음식들을 찾아 먹어야만 했습니다. 그런 유년시절을 겪고 부모를 따라 하얼빈에서 밀양으로 건너온 강천동은 군대를 다녀온 뒤 돈을 벌겠다며 울산공업단지로 떠납니다. 강천동이 울산공업단지로 갓 넘어와 일하던 때를 보면, 그는 밝은 희망을 쫓으며 삶에 대한 의욕을 불태우던 성실한 노동자였습니다. 그러나 밝은 희망의 빛도 잠시, 공장 프레스 사출기가 강천동의 오른손을 깨끗하게 잘라 가져가 버리자, 그는 삶에 대한 의욕을 잃고 술에 찌들어 폭력만을 일삼는 거친 인간으로 돌변합니다.
오른손이 잘린 강천동에게 삶은 불구, 그것일 수밖에 없었다. 강천동은 폐기물을 하천에 방류하는 작업을 시작하며 다시 일어서지만, 중앙정보부를 입에 잘못 올린 탓에 그들에게 끌려가 지독한 고문을 받고 다시 주저앉습니다. 몸을 추스르고 굴뚝청소를 하며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섰을 땐, 굴뚝에서 떨어져 목뼈와 등을 다치고 또 다시 주저앉게 됩니다.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나 개백정 노릇을 시작했지만, 술집 작부에게 사기를 당해 돈을 몽땅 잃고 또 쓰러지고 맙니다. 불운한 유년시절과 함께 강천동의 주변에 산재한 어두운 현실은 그를 자꾸만 악귀로 만들어 갔습니다. 다시는 일어설 기력 없이 술에 취해 허송세월을 보내던 강천동은, 어느 겨울 만취한 상태에서 한 사람을 밀어 넘어뜨려 뇌진탕으로 죽게 하곤 교도소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런 강천동의 모습은 해방 후 단독정부가 급하게 수립되고 정권이 쿠데타로 교체되는 혼란의 시기 속에서도 국가 발전에 목말라 하면서 끊임없이 근대를 향해 약진해 나가던 6,70년대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안정되지 않아 기우뚱거리면서도 경제개발에 허덕여 몸부림치던 6,70년대는 불구임에도 삶에 대한 집념을 놓지 않는 강천동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국민과 정부 간의 괴리로 두 집단 사이에서 빚어지게 되는 무력충돌, 폭력적인 국민탄압과 정권유지, 무력을 앞세운 새로운 정권교체 등으로 얼룩진 당시 형편은, 불구로 인해 포악해질 대로 포악해진 강천동의 모습과 많은 부분 겹쳐있기도 합니다. 불구에도 불구하고 거칠게 삶을 살아나가는 강천동의 모습은 경제빈곤, 이상 정치 실현의 추락 등에 삐걱대면서도 강대국의 대열에 올라서기 위해 몸부림치던 6,70년대의 모습을 잘 대변해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뒤돌아서서 과거의 역사와 대면하다 - 강재필의 경우
서럽고 아팠던 삶을 살아야만 했던 할아버지 강치무의 시대를 지나고, 불구에 의해 폭력을 일삼으면서도 끈질긴 생의 집념을 불태우던 아버지 강천동의 시대를 지나면, 과거의 역사를 거부하고 부정하며 어둠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 강재필의 시대를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강재필은 폭력서클 조직으로 소년교도소를 다녀오고 공갈협박, 금전갈취 사주, 절도, 마약복용 등으로 수차례 교도소를 전전한 인물입니다. 아버지 강천동은 구타와 협박으로 그를 키웠고, 정실질환 때문에 자신조차 돌보기 어려웠던 어머니는 무관심으로 그를 대했습니다. 가족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밀양을 떠나 서울로 도망쳐 생활한 나날들은 강재필에게 깊은 외로움과 방탕함만을 안겨 주었습니다. 강재필은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는 원인이 가족들의 유전인자에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는 과거의 가족사를 철저히 부정하고 거부합니다. 그리고 가족을 천한 유전인자만을 물려준 증오와 슬픔의 대상으로 여깁니다. 때문에 강재필은 아버지인 강천동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목구멍에 박힌 커다란 가시가 시원하게 뽑힌 듯한 후련함을 느끼기까지 합니다. 또 가족에 대한 증오와 슬픔 때문에 교도소에 누나가 찾아오는 것을 반기지 않고, 아내가 할머니에게 버리듯 맡기고 간 아들에게도 정을 붙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내 경우에는 가족이 사랑의 대상이기는커녕 증오와 슬픔 덩어리로 비쳤다. 중학교 시절, 김천 소년교도소에서 지낸 다섯 달을 빼고도 나는 두 차례에 걸쳐 도합 오 년을 감방에서 지냈고, 마약중독 수감자로 교도소에서 보낸 기간만도 두 차례로 일 년이 넘었다. 도합 칠 년의 감금생활은, 한 마디로 나를 정육점 갈고리에 걸린 통돼지 꼴로 만들었다. 지방 덩어리 살코기라도 그 세월 동안을 매달아 놓는다면 수분과 지방분이 되 빠져 명태가 되듯, 나를 삭막한 인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중략) 그러다 나라는 인간이 왜 이런 냉혈동물 심보를 가지게 되었나를 곱씹게 되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았을 유전인자 탓이 아닐까란 생각에 의심이 멈추더니 요지부동이었다. 친자냐 아니냐는 디엔에이 검사가 증명한다. 나는 부모 염색체를, 아비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염색체를 물려받았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할아버지란 실체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아마 마약중독에서 헤매던 때부터였을 것이다. 더 윗대까지는 따지지 않더라도 할아버지 그분을 알게 되면 나라는 실체도 알 것 같았다.
“처음은 내 정신병이 집안 유전인자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파보려 했는데, 그 양반이 자꾸만 나를 당겨. 네 자신을 위해서 나를 기록해보라고.”
그러던 강재필은 지겹도록 자신을 괴롭히는 정신병이 가족들로부터 기인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으로 가족, 그 중에서도 할아버지 강치무의 과거를 되짚어보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교도소를 출소하고 난 뒤 밀양으로 내려와 할아버지에 관련된 과거 자료를 찾아나가기 시작합니다.
서울로 올라가 교도소를 전전하며 분노와 증오의 눈길로 가족들을 바라보는 강재필과 교도소 출소 후 밀양으로 내려와 가족사를 깊숙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하는 강재필은 서로 다릅니다. 앞에서의 강재필이 과거의 역사를 부정하고 탓하기만 하고 있다면, 밀양으로 내려온 강재필은 과거를 향해 뒤돌아서서 마주 바라보고 있습니다. 강재필이 밀양으로 내려오는 이 귀환모티브는 과거를 통해 현재의 나를 찾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되돌아가는 것, 뒤돌아보는 것은 단순히 과거로 향하는 게 아니라, 나를 이루고 있는 근원과 뿌리를 찾아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4. 지난 세월과 악수하다 - 삼대, 강재필에게서 만나다
강재필이 삐걱거리는 불구의 삶을 무턱대고 살아왔던 아버지 강천동으로부터 보아왔던 과거의 모습은 더럽고 추악하기만 했습니다. 독립운동가로 추앙받기도 하고 빨치산으로 손가락질 당하기도 했던 할아버지의 삶도 실패한 삶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가족사를 되돌아보기 위해 마음먹고 난 뒤에는 그들의 삶이 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유전인자 때문에 자신의 처지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고 푸념만 해대던 강재필에게 과거의 가족사는 현재의 자신을 존재하게 해 준 근원지가 됩니다. 할아버지의 과거에 대해 조사하겠다 마음먹고 하얼빈과 블라디보스토크를 다녀왔을 때부터, 아니면 아비인 강천동이 죽자 마약에 취해 택시를 타고 펑펑 울며 밀양으로 내려가던 그 때부터, 이미 강재필은 자신의 근원이 그토록 거부하고 부정하던 가족에게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과거를 향해 이미 화해의 손길을 뻗고 있었던 것을 아닐까요.
지난 가족사를 되돌아보기 위해 밀양으로 내려온 강재필을 대하는 할머니는 냉담합니다. 그러나 강재필은 차가운 말로 일관하면서도 자신을 위한 아침상을 언제나 따뜻하고 풍성하게 차려 내오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가슴이 아려오는 것을 느낍니다. 정을 붙이지 않으려했던 아들 종호가 자신을 아버지라고 불렀을 때, 산에 올랐다가 발에 물집이 잡힌 아들을 업고 내려오면서 아들의 따뜻한 체온을 온 등으로 느꼈을 때에는, 가슴 속에서 울컥 올라오는 부정을 억눌러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강재필은 밀양으로 내려온 뒤에 겪는 사소한 일상을 통해서도 할머니의 손자이며 아들 종호의 아버지인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강재필은 밀양으로 내려와 집필하기 시작한 할아버지의 과거를 마무리할 시점에 와서 과거의 가족사와 현재의 자신을 다시금 떠올립니다.
나의 반생과 할아버지의 일생을 저울에 올려놓고 경중을 비교해보았다. 살아온 자취가 달랐으므로 사실은 비교 대상이 안되지만, 그런 마음이 든것은 그분이 자기 생애를 통해 내 삶을 반성해보라는 무언의 압력을 넣었던 탓이다.
내게 주어진 운명을 뿌리칠 수 없음이 나를 괴롭혔다. 할아버지가 그랬고, 아비 역시 발버둥쳤으나 주어진 운명의 올가미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나 역시 남들처럼 평탄한 길을 순조롭게 걷지 못한, 내리막 돌맹이길만 내 앞에 펼쳐졌을 뿐이었다. 저 아래쪽에서, 네가 올 길을 이쪽밖에 더 있냐고 소리치는 아비의 환청이 기차 레일의 마찰음과 진동에 섞여 따라왔다. 뜬금없이 아비가 왜 갑자기 떠오르는지 알 수 없었다.
아비와 할아버지는 생의 마지막을 자기 의지대로 결정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운명의 섭리에 자신을 맡겨버렸고, 잊혀진 존재가 되어 고단했던 지상의 삶을 끝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운명을 내가 결정할 수 있음을 자각했다.
그런 강재필에게 느껴진 것은 자신의 존재였습니다. 그토록 원망하고 증오하던 가족들의 유전인자,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던 운명에는 자신의 근원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지난 과거의 세월들과 만나 화해의 악수를 나누며, 강재필은 자신이 걸어온 어두운 과거를 반성하고 자신의 존재를 찾습니다. 소설의 결말 부분에 이르러 과거에 자신을 보살펴 주었던 조직의 부탁을 뿌리친 채 베트남 호치민행 비행기를 타고 자신의 새로운 미래를 다짐하는 강재필의 모습은 편안해 보입니다. 과거와 화해했고, 자신의 존재도 찾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5. 과거를 통한 현재 찾기 - 우리의 경우
어두웠던 과거를 뒤로 하고 밀양으로 내려와 자신의 가족사를 뒤돌아서 깊이 응시하는 강재필의 모습과, 그것을 제 손으로 다시 써내려가며 자신의 존재를 찾아나가는 모습은 현재를 존재 가능하게 해 주는 과거의 역사가 얼마나 중요한 유산인가를 다시금 알려줍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의 역사가 언제나 진실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이 남습니다.
따지고 보면 할아버지의 고백이나 할머니의 증언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나름대로 기억의 재생 과정에서 자기가 사는 시대를 저울질하며 기억을 미화하거나 왜곡할 수 있다. 그런 증언에 의지해야 할 기록자도 나름대로의 선입관으로 진실이 아닌 허위에 편승하기도 한다. 그렇게 볼 때, 자서전이나 전기란 게 어디까지가 진실이냐에 대해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 자체가 진실을 은폐하며 얼마쯤은 위장되어 있고 진실도 세월이 흐르면 시대에 따라 굴곡을 겪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역사를 진실하게 바라보는 안목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무조건 부정하고 거부할 것이 아니라, 진실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 역사와 대면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를 진실하게 바라보는 일은 곧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뒤돌아서서 과거의 역사와 화해의 악수를 나눔으로써 가능합니다.
그 동안 김원일이 소설의 과제로 삼은 것들은 역사를 바로 보는 일이었습니다. 이 과제는 쉬운 것 같으나 늘 어려운 것이었죠. 김원일은 언제나 가족을 소재로 삼아 소설 속에서 과거 역사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원일의 《전갈》은 그의 평생 과제가 총망라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전 작품과 비교해서 훌륭하지 않다면 차라리 쓰지 않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그의 다음 작품이 어떤 작품일지 기대가 됩니다. 또 어떻게 역사를 바라볼 지, 그 때쯤이면 그 과제를 다 풀게 될 지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우리는 김원일의 소설을 통해 우리가 우리의 과거에 대해 얼마나 진실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지에 대해 고뇌해야합니다. 그래야 현재가 과거를 통해 살아 숨 쉴 수 있다는 사실을 그의 소설을 통해 조금이나마 더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눈앞에 보이는 현상만을 쫓기에 급급합니다. 이제는 뒤돌아서서 과거와 악수할 때입니다. 그것이 급속도로 변화하는 현재를 바로 이해하는 근거를 제공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