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7/25 21:31

탐서주의자의 책 - 표정훈

탐서주의자의 책 상세보기
표정훈 지음 | 마음산책 펴냄
책의 소유를 유일지상의 목적으로 삼고, 책 내용보다 책 자체를 중시하며, 책을 진과 선 위에 두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탐서주의자' 표정훈이 표현하고, 기억하고, 성찰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 내려간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출판평론가, 도서평론가, 번역가, 작가 등 다채로운 직함을 가지고 있는 저자의 '준법의식마저 마비시켰던' 책 욕심, 학급문고와 인사동 어느 술집에서 책을 훔쳤던 일에 대해 털어놓고, 책을 훔치고 싶은

참으로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던 책이네요.
장쌤의 과사무실에 갔다가 책꽂이에 꽂혀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곤 '오! 끌린다!!' 싶어 집어 든 책이었는데, 몇 장 읽다가 실망 실망 대실망하고 말았습니다. 이 책을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던 건 다름 아니라 요런 실망 때문이었죠. 책의 마지막 장을 모두 덮곤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에이~ 뭐 이런 책이 다 있담. 쩝쩝.

이 책에 관련된 이야기를 잠깐 해 볼까요? 일단 이 책은 책에 관련된 책입니다. 허허허. 이상한 책이지요. 지은이는 책 표지에 '책을 탐하는 한 교양인의 문 사 철 기록'이라고 이 책을 나름 단정지어 놓았네요. 조금 풀어서 말하자면 지은이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책과 관련해서 겪었던 에피소드나 책과 관련해서 떠올렸던 생각들을 거침없이 써내려간 책이라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면 책 내용에 관련된 것, 책의 역사에 관련된 것, 출판과 관련된 것, 작가와 관련된 것, 도서관에 관련된 것 등등, 책과 관련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지은이의 생각과 버무려지면서 몇 개의 글로 탄생되어 엮어진 책이지요. 책과 관련된 책이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울 수도 있었는데, 지은이의 필체랄까요? 글을 전개해 나가는 밋밋함 때문에 정말로 정말로 재미없게 읽었습니다.

이 참에 이 책의 작가에 관한 제 사견을 잠시 풀어보도록 하죠. 이 책의 지은이는 뭐랄까요? 참 속 보이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요. 아- 이걸 생각하다보니 웃음이 막 터져 나오네요. ㅋㅋㅋㅋ 그러니까 이런 거죠. 굉장히 겸손한 척 하는 듯 하면서도 있는 체, 잘난 체는 다 하는 게 문장 속에 그대로 드러난다는 거죠. 짧게 말하면 문장 자체는 분명히 자신의 겸손함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자신의 겸손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문장에서 난 체하는 뉘앙스가 매우! 매우!! 매우!!! 짙게 풍겨나온다는 말이지요. 지은이의 다음 글을 잠깐 볼까요? ^-^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 녀석의 신상에 관한 서류를 작성하는데, 어김없이 부모의 직업을 써넣는 곳이 있었다. '부서나 직위를 구체적으로 적어달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있다. 직장이 없으니 부서나 직위도 있을 리 없는 나와는 무관한 설명이다. '독립하여 자기 힘으로 경영한다'는 자영自營의 뜻을 아주 넓게 해석하면 나도 자영업을 하고 있노라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영업이라면 보통은 상품 판매업, 요식업, 기타 서비스업 또는 사업체 운영 등을 뜻할 터이니 이 역시 나와는 무관한다.
  번역가로 할까? 번역 및 저술가로 할까? 한때 라디오와 TV의 책 관련 프로그램이나 코너에 자주 출연한 적이 있으니 방송인이라고 할까? 아니면 보다 정확히 해서 '일용 잡급 방송인'이라고 할까? 다소 막연하게 문필가라고 하면 어떨까? 여러모로 궁리해 봤지만 이거다 싶은 직업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그 모두에 조금씩 해당하다보니 그 가운데 어느 하나를 꼬집어 택하기 곤란했다. 다니엘 핑크의 『프리에이전트의 시대가 오고 있다』(에코리브르)에 착안하여 '프리에이전트' 혹은 '독립노동자'라고 하면 어떨까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담임교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해설문이라도 첨부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그만두었다.
(중략)
  직업 기입란 하나를 앞에 두고 생각이 너무 멀리까지 와버렸다. 최종 후보로 떠올린 직업은 매문가賣文家 혹은 매필가賣筆家였다. '글을 팔아 밥을 벌어먹고 사는 사람'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직업(?)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나는 자랑할 것도 없지만 부끄러울 것도 없는 매문가, 매필가다. 글 소비자들의 취향과 심리도 감안해야 하고, 글 유통 매체 즉 잡지나 단행본의 형식과 지면 제한 등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어설프더라도 글에서 쇼맨십도 부릴 때는 부려야 하는 매문가다.

  사족: 아뿔사! '매문가'를 기입하려다 미뤄뒀던 사이, 아내가 '번역·저술가'로 기입해버리고 말았다. 첫째 녀석의 새 학년 시작 때나 둘째 녀석의 입학 때를 기약해볼 밖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의 신상기입란에 아버지인 자신의 직업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는 글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직업에 갖다 붙일 수 있는 직업은 정말 다 갖다 붙이고 있죠. 솔직히 번역·저술가가 딱 알맞은 직업인데 말입니다. 혹은 프리랜서 정도도 적합하다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자영업이니, 방송인이니, 프리에이전트이니 따위의 직업들을 쭉 나열해 놓고 있습니다. 뭐 달리 말하면 자신은 번역·저술을 주된 업으로 삼고 있지만 실상 멀티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것을 자랑삼아 늘어놓는 것만 같아 눈살이 찌푸려지는 부분이었죠. 방송 몇 번 출연했다고 방송인이라니? 말이 안되죠. 방송인이라고 불리고 싶었나 봅니다. 그리고 프리에이전트의 시대가 오고 있으니 프리에이전트가 되고 싶기도 했나 봅니다. 중간에 굉장히 불쾌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담임 교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해설문이라도 첨부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니... 아니 교사를 도대체 뭘로 여기고 있는 작자인지 궁금합니다. 어쨌든 마지막에 가서는 겸손을 한껏 부리네요. 글을 팔아 밥을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라구요. 좋습니다. 그런데 사족은 또 뭥미? 솔직하게 말해서 학교에서 학생의 부모 직업 기입란에 요구하는 것은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특별함이 아닙니다. 가장 보편적이고 알기 쉬운 직업 용어를 요구하죠. 그런데 '매문가'를 적어넣지 못해서 무척이나 안달이 났었나 봅니다. 사족까지 덧붙일 정도로 말이죠. 오히려 아내가 참 현명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번역·저술가! 얼마나 알기 쉽고 보기 좋은 직업 관련 용어입니까? 1969년생이며 두 자식까지 딸린 지은이는 아들이 가져온 신상기록부의 부모 직업 기입란을 가만히 들여다 보며 '어떤 직업을 써넣어야 내가 제법 그럴 듯 하게 보일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어쨌든!!
책의 내용들은 책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지은이의 이런 일화들이나 생각들과 함께 얽혀 있습니다. 지은이와 관련된 사족들이 빠져 있다면 조금은 말끔한 글이 되었을 법한데, 그렇지 않아 아쉽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책 제목이 탐서주의자의 책이니 사실상 독자를 위한 책이 아니라 탐서주의자인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한 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책을 좋아하는 즉 지은이식대로 이야기하자면 책을 탐하는 독자라도 이런 책은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을 듯 합니다. 아- 너무 혹평인가요. 쩝쩝.

책을 올바로 읽는 방법 중에는 읽히지 않는 책을 과감히 덮는 방법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전 아직까지 올바른 독서 습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한 번 펼쳐든 책은 마지막 장까지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지라, 이런 책들도 한 번 잡게 되면 쉽사리 놓게 되질 않게 되더라구요. 마지막 장까지 읽으면서 읽는 둥 마는 둥 하면서도 꼭 그렇게 되더군요. 그런데 이번에 다시 한 번 절절히 느끼게 됩니다. 읽히지 않는 책은 과감히 덮자. ㅠㅠ 결단력이 부족한 제 자신을 탓해야지 어쩌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그나마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계속 지은이와 책을 욕 먹였는데 이 부분은 정말 흠뻑 빠져서 읽었습니다. 책의 어원을 지은이가 정리한 내용인데 다음과 같습니다.

  너도밤나무는 오늘날의 영어로 '비치beech'인데 이는 고대 영어에서는 '복boc'이었고, 이것은 다시 고대 영어에서 오늘날의 '북'(book, 중세 영어에서도 사용) 그러니까 책을 뜻하는 말이기도 했다. 고대 영어의 '복'은 고대 고지高地 독일어에서 책을 뜻하는 '부어흐buoh'와 궤를 같이하는데(오늘날 독일어에서 책은 '부흐buch'), 고대 고지 독일어에서 너도밤나무는 '부어하buohha'였다. 고대 게르만족이 너도밤나무 목판에 룬rune 문자를 새겨 넣던 관습에 따라, 너도밤나무를 뜻하는 말이 책을 뜻하는 말을 낳게 되었다는 설명이 유력하다. 요컨대 오늘날의 '북'이라는 말은 어원적으로 고대 유럽의 어느 숲, 범위를 좁히면 오늘날 독일 고지高地의 어느 숲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그래서일까? 나에게는 독일어가 고대 룬 문자만큼이나 낯설지만, 독일 사람들의 이름에서 부흐발트buchwald, 부흐하임buchheim, 부흐홀츠buchholz 등을 접하면 각각 '책의 숲wald', '책이 있는 집heim', '책 나무holz'로 풀이하고 싶어진다.
  한편 희랍어에서 책을 뜻하는 비블리온biblion은, 기원전 3000천 년경부터 나일강 유역에서 기록을 남기는 매체로 사용된 파피루스를 뜻하는 비블로스biblos에서 파생된 말로 알려져 있다. 파피루스는 식물 이름임과 동시에 그 식물을 재료로 만든 기록 매체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라틴어에서 책을 뜻하는 리브리libri 혹은 리베르liber는 식물의 표피 안쪽의 인피부靭皮部를 뜻하는데, 역시 고대인들이 기록을 남기는 매체로 사용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각종 식물의 인피부가 함유하고 있는 섬유는 종이 재료로 적합한데, 예를 들어 전통 한지韓紙 제조에 닥나무, 삼지닥나무, 안피나무 등의 인피 섬유가 쓰이며, 은행권 용지, 궐련 용지 제조 등에도 아마나 저마 등의 인피 섬유가 쓰인다. 너도밤나무, 파피루스, 식물의 인피 등, 서양에서 책을 뜻하는 여러 말들의 어원은 고대인들의 기록 매체에서 비롯되었고, 그 기록 매체는 시물을 재료로 한다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책冊'은 또 어떠한가? 종이가 널리 쓰이기 전 고대 중국에서 문자를 기록하는 매체였던 목간木簡이나 죽간竹簡 여러 개를 끈으로 꿰어놓은 모양을 본 뜬, 전형적인 상형자다. '전典' 역시 묶은 목간이나 죽간을 탁자 위에 얹어놓은 모양을 본 뜬 상형자다. 결국 '책'이나 '전'도 기록 매체에서 비롯된 말이며 식물과 인연이 깊다고 할 수 있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인간은 식물과 함께 기록 매체의 기나긴 역사를 일구어온 셈이다.

뒷부분은 후략합니다. 갑자기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엔트들을 등장시켜서 유치함으로 글을 결론짓기 때문에. --;;
아무튼 표정훈의 탐서주의자의 책이었습니다. 이번엔 달 태그도 얼마 없네요;;(딸랑 세 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Magazine > ∵∴책읽는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탐서주의자의 책 - 표정훈  (0) 2008/07/25
전갈 - 김원일  (0) 2008/06/28
조선여인 잔혹사 - 이수광  (0) 2008/06/11
마음사전 - 김소연  (0) 2008/05/25
Trackback 0 Comment 0